연휴가 끝났다.
며칠 동안 북적였던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.
아이들은 학교에 가고, 아내도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.
다시 혼자가 된 집은 너무 조용해서, 오히려 낯설었다.
방금 전까지만 해도 TV 볼륨이 겹치고,
아이들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고,
모찌가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던 집인데,
지금은 그 소란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.
그 고요함이 반가운 줄 알았는데,
막상 마주하니 멍해졌다.
무기력함일까, 허전함일까.
몸은 쉬는데 마음은 여전히 붐비는 느낌이다.
정확히는, 아무도 없는데 나만 시끄러운 기분.
사람들은 연휴가 끝나면 “이제 좀 쉬자”고 한다.
연휴가 오히려 더 피곤했다는 얘기다.
근데 나는 그 반대다.
북적이던 시간이 차라리 더 좋았다.
지금처럼 조용한 이 하루가 오히려 더 지치고, 더 멍하다.
오랜만에 아이들이랑 붙어있다 보니
내가 아빠라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껴졌고,
그 하루하루가 고단했지만 참 좋았다.
물론 소란스럽고 정신없긴 했지만
그게 사는 맛이라는 걸 다시 배운 기분이다.
그러다 오늘 아침,
갑자기 다시 조용해진 집에서
어색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니
그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.
블로그에 글을 써보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
손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.
쓸 게 없어서가 아니라,
그저 오늘이라는 하루가 좀 멍해서다.
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마음도,
그걸 멈추려는 마음도 애매하게 엉켜 있었다.
애매하게 남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며
아이들이 있었던 거실을 한 번 더 바라봤다.
며칠 전 그 웃음소리,
그런 평범한 일상들이
지금은 좀 사치처럼 느껴진다.
그렇게 멍하니 있다가,
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.
익숙한 루틴이라도 하나 지켜야
내가 나를 잃지 않을 것 같아서.
글을 쓰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마음,
요즘의 나는 그런 감정으로 하루를 붙잡는다.
어떤 날은 바빠서 못 쓰고,
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못 썼는데,
오늘은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로 힘들다.
고요함 속에 나를 붙잡는 일이, 생각보다 어렵다.
글을 쓰다 보니 조금씩 감각이 돌아온다.
그렇다고 마음이 다 풀리는 건 아니지만
그래도 또 한 줄을 적어본다.
그래야 내일의 나에게
“너 오늘도 뭔가는 했다”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.
그리고 문득, 달력을 본다.
내일은 어버이날이다.
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까
아니면 그냥 조용히 하루를 보낼까
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.
어릴 땐 그냥 꽃 한 송이 드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
이젠 꽃보다 먼저 꺼내야 할 말이 너무 많다.
그런데 그 말들이, 쉽지 않다.
나는 아직 못난 아들이고,
그 마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에
이 고요함이 더 깊게 스며든다.
그래도 이렇게 또 한 글을 쓰고,
그 안에 오늘을 남긴다.
그리고 내일을 기다린다.
조금 두려운, 하지만 꼭 지나야 할 내일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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